집단기억 김광석

집단기억 김광석

혹은 중년의 향수

올 봄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대학로 아트센터 K 네모극장에서 열렸다. 비좁은 계단을 걸어올라가 만난, 250명 남짓 들어가는 공간은 김광석 열기로 가득했다. 앵콜공연이 이어졌다. 국내에서 80년대 90년대를 구가하며 지낸 청장년들에게 잊지 못할 가수 김광석은 여전히 마음 속에 살아 있었다. ‘김광석 라이브콘서트’와 앨범을 통해 세상을 풍미한 노래가 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김광석 추모 콘서트’,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등을 통해 지금까지도 집단기억 속에 이어지고 있었다.

또하나의 김광석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나오는 주인공은 김광석을 좋아하는 가수와 밴드들이다. 가수 이름은 이풍세. ‘이 풍진 세상을 살았더니’라는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가 이 풍진 세상을 잘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말하는 가수 이풍세는 풍진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거듭 겪고 노래 부르는 무대를 떠나기까지 하지만, 결국 그가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어떤 행운이었을까.

"촌스러움"

그 시대의 촌스러움 때문이 아니었습까? 촌스러움이란 것은 도시만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나쁜 뜻으로 들리지만,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랑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공연의 홍보 프로듀서 권미강 씨는 ‘하늘극장’이란 가상무대에서 그가 김광석과 나눈 가상인터뷰에서 김광석을 만나면서 그의 모습이 촌스럽지만 그 또한 매력이라 했다.

김광석: 82년에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1학년 때 대학 연합동아리인 '연합메아리'에 들어갔어요. 그때 한 친구에게 '젊은 예수' 라는 운동권 가요집을 선물 받았는데 그 안에 있던 '못생긴 얼굴'을 부르다가 그만 남자답지 못하게 울어버렸어요. 진짜 촌스럽죠.

그의 촌스러움은 또한 살아 있는 심장을 뜻하고 그러하기에 강함과도 통했다. 김광석이 집회 출연가수로 인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집회를 통해 그를 접하지 못한 대중들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얻었으니 그건 그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 곧 그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꾸미지 않은, 조금은 수줍음을 내포한 상태가 또한 새로움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김광석은 1984년에는 김민기의 ‘개똥이’ 음반에 참여하고, 87년 10월에는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노찾사의 첫 정기공연에서 ‘녹두꽃’을 부르면서 집회 출연 가수로 활약했지만, 다른 한편 김창기, 김창완 등과의 인연으로 대중가수로도 떠올랐다. ‘사랑타령으로 일관하던 주류 대중음악에 대한 대안’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대안'이 무엇을 뜻하였는지는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많은 이의 기억 속에 내려앉았다는 것 정도이다.

"일어나"

뮤지컬이 끝난 후 박수는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응답하는 앵콜송에 이번에는 청중이 화답했다. 일어나 함께  <일어나>를 불렀다. 열기가 극장에 가득했다.

부드러운 남자 김광석 혹은 극 중 이풍세, 혹은 노래를 부른 박창근이란 가수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때 그 청중들이 그들이 부른 노래를 부르며 주먹 쥐고 다시 바람을 불렀다. 청중 각자가 마음 한구석에 흥건히 담고 있는 추억 때문이었다면 그 추억은 무엇일까?

80년대 90년대에 한국에 있지 않았던 필자에게, 그 시대를 한국에서 보낸 오늘날 장년들이 갖고 있는 김광석에 대한 기억의 원형이 여기 이 극장에서 아슴프레 다가왔다. 김광석이 살던 시대를 함께 살며 누린, 누추한 현실과 정열에 대한  따뜻한 기억 아니었을까. 요즘 청년들과는 달리 아직 많이 수줍던 그때 그 청춘남녀들, 군에 갈 때가 된 청년들, 마음에 둔 여자친구 혹은 마음에 둔 남자 친구에게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촌스러운" 청춘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진솔하다고 믿었던 한 시대의 신앙도 담겨 있었다. 인내하지만 고지식하고, 비판하지만 우정의 끈을 놓치지 않는 정겨움도 함께 묻어났다.

집단기억의 대상

김광석은 1963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7년에 설흔넷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동기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런저런 추정이 있었다. 답이 없는 그러한 추측을 하기보다 김광석의 노래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어떤 유형을 추출하는 것은 어떨까?

좀전에 김광석의 촌스러움을 언급하였는데, 이 촌스러움은 조금 거리를 두고 말하자면, 갈망 조금과 허무주의 조금을 섞은 것은 아닐었을까? 무엇인가를 갈망하지만 그 대상의 정체를 정확히 명명하기에는 어렵고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언제라도 허무주의로 살짝 빠질 수 있는 그 위험, 그 불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영화 <공동경비구역>에 실린 것은 그런 점에서 어울리는 일이다. 단순히 이등병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공동경비구역에서 서로 만나는 남북군인들의 처지가 바로 김광석식 노래와 비슷하지는 않은지. 그것은 남북의 군인들이 우연처럼 만나지만 그 만남 한구석에는 자신도 모르게 호기심과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을 보호해 주는 안전장치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들의 만남은 현실 장치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기 에 애시당초 비극성이 짙게 내재했다. 현실 건너편에 자리한, 오래되고 무의식화된 염원으로 인해 같은 나랏말을 쓰고 동족이란 느낌이 아주 옅게 묻어났지만, 그렇다고 하여 민족주의 색깔을 진하게 덧붙이면 바로 거짓말일 것 같은 <공동경비구역>의 어설픈 관계는 그래서 더 상처입기 쉽고 사고나기 쉬운 불안한 상태였다. 김광석을 향한 집단 기억 속에 잠긴 갈망과 정열 또한 그러한 불안을 깔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를 살아가다 바람처럼 다시 불어오는 김광석을 만나러 그 대학로 아트센터 K 네모극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누가 보랴 혹은 누가 좀 본들 어떠랴 하면서 눈물을 훔치는,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일어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촛불집회를 하면서 순수를 이야기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혁명을 할 수 없다고 미리 접어버리는 오늘날의 부드러운 군중들에게 김광석은 그의 이른 죽음으로 함께 누린 절망과 존재의 일치감을 슬그머니 던져준 것은 아닐까?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그런 꽃잎같은 삶은 황야에 선 기분으로 80년대와 90년대를 보낸 세대들에게 위로가 된 집단기억이기도 했다. 감성을 부추기고 연약함을 확인하는 한편, 함께 갈망한 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사이 사그러든 그 갈망은 2013년 오늘 두 배로 다시 노래로 바람으로 불어온다.

(eh)

풍경 42호 4면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