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선 노비들" - 노동자 혹은 서민

[서평] "조선 노비들" - 노동자 혹은 서민

천하지만 특별한 조선노비들

이대연 편집위원

‘상사가 부당한 일을 시켰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입니까?’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시험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다. 부당한 일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즉시 부당함을 지적하겠다’라고 말한다면 정답과는 거리가 먼 답변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상사나 회사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으면서 부당함을 지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사나 회사에 밉보이게 되고 요즘 같이 해고가 쉬운 시대에는 직장에서 잘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인들을 흔히 ‘파리목숨’에 비유한다. 경영자나 상사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직장인들 또한 스스로를 회사에 얽매여 있는 종(노비)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지도 벌써 130년이 흘렸지만, 이렇듯 노비의 개념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무시하여선 안 될 사회계층

김종성의 ‘천하지만 특별한 조선 노비들’은 조선 시대의 노비와 오늘날 노동자의 삶을 연결해 주는 책이다. 사극에서 노비들은 그저 마당이나 쓸고 종종 매질이나 당하는, 무지하고 무식하기에 부당한 대우와 삶의 무게에 변변하게 저항 한 번 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노비를 조선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조선의 경제와 행정을 이끌어 가는, 결코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사회계층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나거나 살았던 열 여덟 명의 삶을 통해 조선사회와 이전 사회의 노비 개념의 차이를 설명하고 조선사회 특유의 노비개념을 보여 준다. 또한, 다양한 사료들로부터 조선사회 노비들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 유, 무형의 사회적 관계, 면천, 저항 등의 모습을 끄집어 낸다.

먼저, 이 책은 열 여덟 명의 삶을 소개하면서, 조선시대 노비의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선사회에 대한 편협한 시각들을 고쳐 주기도 한다. 수 십 명의 제자를 둔, 글 읽는 노비와 천여 명의 부하를 거느린 노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한성 최고의 기생을 차지할 만큼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노비와 상업으로 번 돈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화폐개혁까지 거부하는 노비들의 모습은 조선시대 신분구조를 사농공상으로만 나누던 기존의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조선사회에서 법적으로 존재하는 신분은 ‘양인과 천민’뿐이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이전에 신분구조로 알고 있던 사농공상은 신분 구별이 아니라 직업의 구별이며, 이는 양인 중에도 사농공상이 있고 천민 중에도 사농공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노비의 삶을 통해 본 조선시대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단지 특이하고 성공한 노비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노비와 공노비의 삶, 외거노비와 솔거노비의 삶, 납공노비와 선상노비의 삶 등 여러 노비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의 경제구조와 조세제도에 대해서도 우리의 시각을 넓혀 준다.

관청에 속한 노비들은 조선시대의 행정업무 대부분을 처리했고, 농업 생산 뿐만 아니라 수공업 제품의 생산 또한 노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선의 행정과 경제는 기본적으로 노비들의 생산활동이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체제였다. 주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손가락이 잘리고, 매타작을 당해 죽어도 동정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죽인 주인이 추앙을 받는, 기본적인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노비들이었지만 이들이 산업생산의 많은 부분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저자는 조선시대 노비의 삶과 오늘날 노동자의 삶을 연결짓고 있다.

조선시대 노비들은 무지하고 나약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또한 신분제도의 불평등과 부당한 처사에 저항했다. 때로는 양반 귀족층이, 때로는 왕과 국가가 이러한 저항을 막았지만 저항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노비와 서민

130년 전 노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비록 노비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우리사회에는 계층, 계급 간의 억압과 불평등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가 사는 현재가 결코 조선시대보다 낫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 보게 하는 글을 남긴다. 고된 오늘의 삶과 불안한 미래를 안고 있는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글이기에 여기에 인용해 본다.

“오늘날의 서민이 노동자 대중이라면, 옛날의 서민은 노비 대중이었다. 즉 이 둘은 자기 시대의 대표적인 서민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노비제 시대와 노동자 시대에는 역사 발전의 공통적인 패턴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패턴은 앞으로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

(풍경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