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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극을 통해 본 세상> (1) 두 가지 유산

<연속극을 통해 본 세상> (1) 두 가지 유산

 

<힐러>에 나오는 유혹과 단절 혹은 인간에 대한 소박한 믿음

2014년 12월 8일부너 2015년 2월 10일까지 방영된 KBS 월화드라마 <힐러>는 동포사회에서도 인기작품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는 국내 연속극은 현재 국내사회의 언어와 정서를 접하는 소중한 창구이기도 하다. 특히 <힐러>의 경우는 <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가 쓴 대본은 역시 다르다고들 하며 환호하였다. 게다가 이 작품은 “모래시대 자녀세대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사진 한 장의 연결고리

이 이야기 속에는 반복되는 사진이 있다. 80년대 초에 민주언론의 꿈을 품고 무허가 방송을 하고 다니는 젊은이 다섯의 사진이다. 이 사진이 우연이 아니라 주인공들을 만나게 하는 연결고리란 점은 주인공 서정후(지창욱 분)가 우연히 보게 된 사진이 자신이 갖고 있는 사진과 똑같가는 데서부터 드러난다. 이 다섯 사람의 아들, 딸 혹은 동생이 자신의 과거와 부모시대의 유산과 부딪히게 되고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제를 안게 되고 이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온갖 위험과 유혹을 겪게 되지만 세 젊은이는 결국 부모시대의 진실과 허위를 밝혀내는 일에 성공한다. 해피앤딩.

두 가지 유산

두 가지 유산은 어디나 그러하듯이 자랑스러운 유산과 치욕스런 유산이다. 치욕스런 유산이 강한 곳에서는 치욕이 자랑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고 억울한 사람이 치욕을 당한다. 하나는 친구를 배신하고 얻은 권세와 끊임없는 자기변명, 다른 하나는 자신이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삶을 이어가는 억울함이다. 물론 이 유산은 부모시대에 벌어진 일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힐러>는 이러한 과거사를 청산하는 데 몰입한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에 부적처럼 작용하는 것이 당시 부모세대가 만들었던 잡지 <힐러>인데 이 문건은 세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김문호 기자(유지태 분)의 방에 보관되어 있다가 극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 김문호의 친형이자 권력과 손 잡아 언론사주가 된 김문식에게 넘어간다. 물론, 김문식은 이 훔쳐간 <힐러>라는 잡지로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써먹는다. <힐러>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액션과 숨가쁜 스토리전개 외에도 이처럼 지독한 억울함의 재현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억울해도 한마디 하기 어려운데 극을 통해 그 지독한 어려움을 반추하며 나쁜 사람을 손가락질하기 좋기 때문이다.

유혹

어떻게 보면 부모 세대의 유산은 그대로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양식의 부패가 있고 제안이 있기 때문이다. 극은 바로 그러한 반복되는 유혹의 정체를 잘 포착했다.

“눈 한 번 딱 감으면 되는 것을……”

이란 말로 다가온 유혹은 김문식에게는 제일신문 사주라는 언론권력까지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동생 김문호나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은 서정후는 손을 잡지 않는다. 부모 세대에는 있었던 배신의 역사에 대해 좋은 사회배경을 지닌 문호나 고아처럼 자란 정후나 모두 떨쳐낸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성립시키는 틀이다. 이 틀을 바탕으로 하여 극은 진실을 기어이 밝혀내는 상쾌한 해피앤딩을 준비한다.

단절

그렇지만 해피앤딩은 그냥 쉽게 오지는 않는다. <힐러> 뿐 아니라 오늘날 국내 연속극에서는 부모세대와의 단절이라든가 기득권 포기 같은 속 모티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힐러>에서도 김문호 기자의 경우 친형인 김문식 사장의 중재로 권력의 유혹이 오지만 김문호는 그러한 유혹을 뿌리칠 뿐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친형과도 단절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한 단절은 바로 가족관계로 인한 온정주의를 벗어나는 것이며 부패와 범죄의 수치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생명줄 같은 것이다. 오늘날 세대는 더이상 부모의 비리를 유산처럼 따라하지 않는다, 앞세대의 비겁함을 이어받지 않는다, 하는 식으로 젊은 세대 찬사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 무리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에 얽매여 혈연에 얽매여 판단력을 흐리는 것이 당연한 스토리인 시대는 지난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믿음

그리고 궁극적으로 <힐러>를 힛트작으로 만들어 준 영약은 이 극 속에 나타나는 성품들이기도 하다. 수양딸과 친구처럼 춤추는 인권변호사 아빠, 살인의 혐의를 받는 남자를 말 한 마디로 믿어주는 여자(채영신), 변명을 하고 싶지만 질문해 오기를 기다리는 남자(서정후)…… 이러한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인성이 겉으로는 왈가닥거리는 주인공들에게 담겨 있다는 것. 이것이 <힐러>의 지극히 비현실적인 인물들에게 기대를 걸며 <힐러>를 찾게 되는 동력이 된기도 한다. 심지어는 스파이까지 신뢰로 대화하고 역으로 활동하게 하는 성품(김문호)과 기지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 인간에 대한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연속극 속에 나오는 세상이 현실이 될 수는 없지만 연속극 속에 나오는 세상이 희망이 될 수는 있다. <힐러> 에는 몇 가지 표본조각이 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하였다.